본문 바로가기

주거권, 도시재생

뉴타운ㆍ재개발사업은 과연 노동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까?

지난 주에 노보에 실을 글을 부탁 받고 간단히 정리한 글입니다.
완전히 새로 쓴 글이라기 보다는 여기저기 있는 토론회 자료와 시사IN 기사 등에서 내용을 가져와서 재구성한 것입니다.
제목에 대해서... 노동자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노보에 싣는 글이라서 일부러 노동자의 관점에서 읽어달라는 뜻으로 노동자를 강조했을 뿐입니다.
글은 매끄럽지 않지만 내용은 깊이 생각해볼만한 주제입니다.

==============
뉴타운ㆍ재개발사업은 과연 노동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까?


노동자들에게 뉴타운ㆍ재개발사업은 과연 좋은 일일까? 뉴타운ㆍ재개발이 되면 거기에 들어가 살 수 있을까? 아니 서울 근처에서라도 살 수는 있을까? 만약 당신이 집주인이라면 조금(정말 조금)은 가능성이 있고, 세입자라면 서울에서 살기를 거의 포기해야 한다.

2005년 장위동에 다세대 주택을 4천5백에 구입했던 임씨는 뉴타운 개발 후 30평형 조합아파트를 분양받으려면 족히 4억은 있어야하는 분담금을 감당할 수 없어 집값이 1억으로 오를 무렵에 집을 팔고 상계동에 아파트 전세를 얻어 이사를 갔다. 그러나 상계동의 전세값이 덩달아 뛰어서 결국 서울살이를 포기하고 의정부로 이사를 갔다. 집주인이라고 해서 계속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울시 뉴타운ㆍ재개발 지역에서 정비 전 거주가구의 평균 주택규모는 전용면적 80㎡(24평)이고, 주택가격은 평균 3억9천만 원, 거주가구의 평균소득은 207만 원이다. 그런데 뉴타운ㆍ재개발사업으로 정비 후 평균 주택규모는 전용면적 107㎡(32평), 주택가격은 5억4천만 원으로 큰 폭으로 늘어난다. 재개발사업 아파트 평균분양가가 5억3천7백만 원이므로, 자기자본 2억 원에 대출이 3억3천7백만 원, 월 이자가 196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월요구소득수준(DTI 30%)은 653만 원이다. 월급이 653만원은 돼야 뉴타운ㆍ재개발 아파트에 입주해서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뉴타운ㆍ재개발로 공급되는 주택의 99%는 아파트다. 그러니 집주인이라 하더라도 모아둔 재산이 웬만큼 있든지, 대출을 받든지 아무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직 짓지도 않은 아파트에 거액의 계약금, 중도금, 입주금 따위를 제 날짜에 맞춰 꼬박꼬박 낼 수 있고, 대출이자를 꼬박꼬박 갚을 수 있으면 당신은 뉴타운ㆍ재개발로 재미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집주인이라 하더라도 전세를 끼고 소유한 경우라면 새 집을 소유하기는커녕 서울에서는 전세조차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뉴타운 지구 내 거주 가구 중 주택가격이 3억 원 미만인 가구가 50%고, 전세금을 제외한 순자산이 2억 원 미만인 가구도 무려 32%나 된다. 그런데, 뉴타운 재개발 사업 전에는 86%를 차지하던 5억 원 미만 주택이 사업 후에는 무려 30%로 줄어들었다. 뉴타운사업이 완료된 길음4구역에서는 집주인 중 15.4%만 재정착할 수 있었다.

만약 당신이 집주인이 아니라 세입자라면 서울에서 계속 사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은평구 진관동에 세들어 살던 유씨는 서울시 뉴타운 세입자대책에 따라 임대아파트 49㎡(15평)에 들어갈 자격을 얻었지만 한 달에 관리비와 월세를 합쳐 40만원 넘게 내야 하는 부담감에 뉴타운 입성을 포기하고 고양시 지축동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뉴타운ㆍ재개발사업에서 임대주택을 공급한다고는 하나 현재 지정된 34개 뉴타운지구 임대주택 건립계획을 보면, 전체 공급량의 17.5%, 세입자 가구 대비 18.8%만 공급될 뿐이다. 여기에는 전세금 1억 원이 넘는 장기전세주택도 포함된다. 기존 세입자의 81.2%는 돈이 있든 없든 무조건 떠나야 한다.

이미 완료된 뉴타운ㆍ재개발사업 구역에서 사업 전에는 83%에 이르던 전세가 4천만 원 미만 주택이 사업 후에는 0%로 한 채도 남지 않았다. 앞으로도 서울 강북권(한강 이북) 뉴타운 지역에서 2012년까지 서민주택인 단독ㆍ다세대ㆍ다가구주택 18만5천 채가 철거될 예정이다. 뉴타운ㆍ재개발사업이 전면철거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대규모 이주가 불가피하고, 인근 지역까지 연쇄적인 전ㆍ월세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수색ㆍ증산 뉴타운 지역에서는 2년 사이에 18평 빌라의 전세값이 4천만 원에서 8천만 원으로 두 배나 뛰었다. 신당동에서는 15평짜리 낡은 빌라의 전세값이 1억5천만 원을 웃돌고, 아현동은 개발부지에서 비켜간 동네에서도 14평 빌라의 전세값이 8천만 원이나 된다. 아현뉴타운에서만 9천세대가 이주해야 하는 상황이니, 앞으로도 얼마나 더 오를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상도4동에서 30년을 살았던 신씨는 재개발사업으로 2008년 2월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되었어도 아직도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웃집들이 부서지고 자신이 살던 집도 부서졌지만 사글세라도 얻어서 갈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뉴타운 지역의 세입자 가구는 월평균 가구소득이 171만원이고, 임대차보호법상 소액보증금 보호 대상에 해당하는 순자산 4천만 원 이하의 가구가 70%나 된다. 적어도 세입자 가구의 70%는 서울에서 계속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남의 일 같은가? 당신이 만약 부모로부터 물려받거나 따로 모아둔 재산이 많다면, 또는 죽어라 열심히 일을 하든지 임금인상 투쟁을 빡시게 하든지 해서 아무튼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달에 6백만원 이상 벌 수 있으면 뉴타운ㆍ재개발사업을 찬성하거나 무관심해도 손해 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재산도 없고 벌이도 시원치 않다면 지금의 직장을 계속 다니기 위해서라도 지금과 같은 방식의 뉴타운ㆍ재개발사업을 반대하는 목소리에 한마디라도 보태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