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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이야기

어린시절 불장난에 관한 추억

내가 몇살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어렸을 때다.

계절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때로 기억하는 어느날 나와 형은 뭔가를 궁리하고 있었다.
형과는 평소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았지만, 이날만큼은 무슨 일인지 형제가 진지한 탐구정신에 의기투합하고 있었다.

그날 우리의 탐구 주제는 바로 석유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방울도 나지 않는다던 바로 그 석유를 우리가 만들어보자는데 형제는 너무나 쉽게 의기투합했다.
우리는 에디슨도 놀라 자빠질 너무나 기가막힌 가설은 가지고 있었으므로 틀림없이 석유를 만들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 가설은 바로

"석유는 불에 잘 타니까 불을 다시 석유로 바꾸는 방법만 찾으면 된다."

당시 우리집 마당에는 소 먹이려고 볏짚을 집채만큼 쌓아뒀었다.
우리는 그 볏짚이 우리에겐 최고의 실험재료라는데 한치의 의심이나 이견이 없었다.
볏짚은 가을볕에 바싹 잘 말라 있었고 지붕과 맞닿을만큼 잔뜩 쌓여있었의니 재료가 모자라 실험이 중단될 일도 없었다.

우리는 주저없이 바로 실험에 들어갔다.
볏짚을 한웅큼 집어다놓고 성냥을 그어 불을 붙였다.
볏짚은 소리도 내지 않고 정말 잘탔다.
우리는 계속해서 볏짚을 한웅큼씩 가져다 태우며 진지하게 이 불을 석유로 바꿀 방법을 궁리했다.
남들은 불장난이라 하겠지만 우리 형제에게는 진지한 탐구정신으로 거행한 획기적인 실험이었다.

그런데 볏짚을 태울수록 따끈따끈한게 몸은 점점 나른해지고 우리의 연구는 도통 진척이 없었다.
불을 이리 뒤적 저리 뒤적 아무리 쑤석거려도 도무지 석유를 만들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고, 문득 정신이 들었을 때는 불이 볏단을 타고 올라 지붕에 옮겨붙고 있었다.

우리는 다급하게 "불이야"를 외쳐댔고, 동네사람들이 손에손에 바께쓰를 들고 뛰어와 물을 길어다 지붕에 물을 뿌렸다.
집에 수도가 없고, 마을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쓰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동네사람들은 우물로 뛰어가 바께쓰에 물을 채워서 들고 다시 뛰어와 우리집 지붕에다 뿌리기를 몇번씩 반복한 후에야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그날 죽을만큼 혼이 났는 지 아니면 가볍게 용서받고 끝났는 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끝내 석유 만들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고, 그 후로도 분출구를 찾지 못한 나의 탐구정신은 전류의 짜릿한 찌리리함이나 가전제품의 내부구조 따위로 옮겨갔고 우리집에는 원인모를 전기사고와 제품고장이 잦았다.

그렇게 나름대로 노하우를 익혀가던 나는 새 전기밥통을 뜯어서 고장난 헌 전기밥통을 고쳐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새 전기밥통은 끝내 원상복구시키지 못했고, 라디오, TV 따위에도 비슷한 일은 몇차례 반복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