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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이야기

시내버스 604번

나는 가끔 출근길에 중구청 앞에서 시내버스 604번을 갈아탄다.

내가 중구청 앞에서 604번 버스로 갈아타는 이유는 이곳이 604번 회차 지점이라 거의 빈차로 출발하기 때문에 자리를 골라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 말고도 이곳에서 604번 버스를 주기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맞은편 중부시장에서 아침 장을 봐가는 식당아줌마, 시장 건어물상인들인데, 604번 버스는 중부시장에서 출발하여 남대문시장, 공덕시장, 신촌, 합정, 화곡시장을 지나가니까 이들에게는 황금노선이겠다 싶다.

이들은 보통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이며 대게는 대여섯개의 상자 또는 비닐봉지를 거느리고 다닌다. 내용물은 보통 멸치, 건미역, 건오징어, 북어 따위다.

거느린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이 양반들이 이 물건을 한꺼번에 들고다니지 못하고 여러번에 걸쳐서 옮기거나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매번 이 물건들을 같이 들고 버스를 탄다.


이 할머니들은 버스에 타서도 조용히 있지는 않는다.

묻지도 않은 당신네 사는 이야기들을 주절주절 내뱉는다.

기사 아저씨가 넉살 좋게 맞장구를 쳐주면 목소리는 더 커지고 별별 사연을 다 쏟아낸다.


오늘 아침엔 공덕시장에서 장사를 한다는 할머니가 북어와 오징어를 한아름 안고 탔다.

당근 나도 비닐봉지 두어개를 같이 들고 탔다.

기사 아저씨가 내용물에 관심을 보이자 건오징어를 꺼내들고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오징어는 잡은 날 바로 말린거라야 이렇게 맛있는 오징어가 되는거야. 냉동했다 말린 오징어는 다리도 까맣게 되고 맛이 없어."

"내가 공덕시장에서 28년을 장사를 했는데 불이 나가지고 지금은 전에 오분의일밖에 안돼. 좁은께 장사도 전에만 못해."

"기사 양반 공덕시장에 불났던 거 알어요? 내가 거기서 28년을 장사를 했어."


이쯤되면 기사 아저씨도 맞장구를 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따 오징어가 진짜로 맛있어 보이네요. 그거 얼마씩에 팔아요?"

"하나에 천원썩 주께. 기사양반도 사먹어봐요. 다섯개 오천원에 사. 기사양반인께 좋은 놈 골라주께"

잠시 정차 중에 기사 아저씨가  할머니에게 걸어오며 주머니를 뒤지더니 천원짜리가 세개밖에 없다며 오징어를 세마리를 사서 다시 운전석으로 갔다.


할머니는 내친김에 하차하려고 서있는 젊은 커플에게도 오징어를 권한다.

커플은 세미나 가는데 오징어냄새 나면 곤란하다며 거절하곤 자기들끼리 소곤소곤 키득키득거린다.

할머니는 아예 장사준비까지 하려는지 봉지를 뒤져 투명한 비닐 포장지를 꺼내더니 오징어를 나눠담기 시작하고, 오징어 냄새는 버스를 가득 메웠다.


기사 아저씨가 "오징어 맛있네요. 할머니 젊어서 이쁘셨겠어요" 라며 추켜주니 할머니는 목소리를 더욱 키운다.

"클라쓰에서 2등하면 서러워라 했제. 내가 칠십이야. 고희. 4월8일에 칠순잔치를 했어... 부주는 하나도 안받고 백명을 초대했어... 부주는 뭐하러 받어... 부주 안받고 그냥 오백만원 들여서 했어....오백만원 들었어"

어쨋든 결론은 자기 자랑이다. ㅋㅋㅋ


이야기는 그렇게 콩밭에 메뚜기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어 공덕시장에 오면 족발에 술한잔 대접하겠다는 둥...기사아저씨가 잘 안다는 신발가게 아줌마랑도 28년 장사하면서 매일 눈 마주치고 웃는사이라는 둥...신발가게 아줌마가 이쁘고 키가 작다는 둥....어느집은 SBS에 방송 나갔는데 맛은 하나도 없다는 둥...^^...이러쿵저러쿵하는 사이 버스는 공덕시장에 다다랐다.

할머니는 비닐봉지들을 주섬주섬 챙겨 옮기고 기사 아저씨와 작별인사를 주고받으며 공덕시장으로 들어갔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