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거권, 도시재생/장수마을(삼선4구역) 이야기

달동네라도 봄은 봄이다. ^^

얼었던 대동강이 풀린다는 우수부터 10도 안팎으로 포근한 날씨가 3~4일간 이어진 지난 일요일 오후.
연극공연에 초대를 받고 대학로로 넘어가는 길에 장수마을(삼선4구역)을 지나치며 골목길을 둘러보았다.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내렸던 겨울.
유난히 겨울이 더디 가는 이 마을에도 봄은 오고 있었다.

벽에 바짝 붙여둔 눈이 며칠 이어진 포근한 날씨에 많이 녹아내렸다.
이 정도면 완연한 봄이다.

평지의 대로변과는 달리 달동네 골목길은 눈을 치울데가 없어서 벽에 붙여서 쌓아둔다.
물론 눈 치우는 일은 주민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
구청이 쓰레기도 치워 주지 않는 이 후미진 골목에까지 와서  눈을 치워주는 일은 애시당초 바랄 일이 못된다.  자력 갱생...
그러나 녹은 눈이 다시 얼어버리면 눈길보다 더 힘들어질테니 제발 눈 다 녹을때까지만이라도 포근한 날씨 이어지기를...


매서운 추위에 수도와 화장실이 얼어붙어 여러집이 곤란을 겪었다.
물은 사다가 쓴다지만 꽁꽁 언 화장실은 한 줌 오줌도 흘려보내질 못한다.
이 집은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는 걸로 보아 아예 이 집에서의 겨울나기를 포기한 듯..


봄이 오고 얼음이 녹으면 강남갔던 제비처럼 집 나갔던 이는 돌아오겠지만, 그를 맞이하는 건 겨우내 쌓인 각종 요금고지서...


달동네의 봄은 꽃이 피기도 전에 재빨리 온다.
명태는 겨우내 찬바람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여 황태가 되지만,
달동네는 겨우내 찬바람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여 갈라지고 벗겨지고 무너져 폐허가 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골목길 평상...
지붕없는 마을회관 역할을 톡톡히 하다가 겨울에는 마땅히치울데 없는 눈을 쌓아두는 창고가 되어준 마을 공동시설(?!)이다.
쌓아둔 눈도 거의 다 녹았으니, 눈이 다 녹으면 부서진 널빤지 새걸로 덧대고, 찢어진 장판은 기워서 반질반질하게 잘 닦겠지... 골목길은 다시 활기를 띨 것이다.


겨우내 찬바람 맞으며 제 쓰임새를 기다려 온 의자들도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 누가 주인인지도 모를 일이다. 


달동네라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더 간절하고 정갈할 수밖에...
햇볕 한 줌이라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이들의 정갈한 마음에 봄 아지랑이 아낌 없이 흐드러지기를....

봄은 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