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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권, 도시재생/장수마을(삼선4구역) 이야기

장수마을(삼선4구역) 대안개발계획의 시련

장수마을(삼선4구역) 대안개발계획이 새로운 시련기에 접어들었다.

15일 혜화동 녹색교육센터에서 대안개발팀과 주민대표자들이 참석하여 경관협정에 의한 개보수방식과 합필에 의한 신축방안을 검토하는 회의를 진행했다.
7월5일 주민총회에서 비용문제로 공동주택 방식을 포기하고, 경관협정에 의한 개보수방식과 합필에 의한 신축방안으로 압축하여 진행하기로 한 후 주민대표자들이 낙담하고 의욕이 떨어진 상황에서 진행된 공동회의였다.
중간에 대표자모임을 갖고 재개발예정구역 해제와 경관협정사업 요구를 동시에 걸고 주민동의를 받자고 합의하면서 수습이 되긴 했지만, 대안개발팀 내에서도 정리되지 않은 쟁점들이 있어서 공동회의에서 결론을 잘 이끌어낼 수 있을지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이날 참석한 주민대표자분들은 이강제, 박현수, 김용산, 이성술씨 네 분이다.
우려했던 것 보다는 주민대표자들의 표정이 밝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주민대표자들은 경관협정에 의한 개보수방식에 대해서는 구조적인 안전문제와 생활상의 불편함이 어느 정도 개선될지에 대해 의문을 제시했다. 
주민대표자들은 합필에 의한 신축방식을 선호 했지만, 막상 대안개발팀 멤버들 사이에서는 개별 필지나 합필 신축방안은 현행 도로와 주차장 관련 법규를 피해갈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었다. 골목길 보존 등 경관관리 차원에서 지자체의 결단을 촉구해볼 수는 있으나, 지자체가 실정법을 뛰어넘어 과감하게 결단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주민대표자들은 재개발 예정구역 해제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지만, 해제 후의 대안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주민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며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제기되는 우려나 의문점을 보완하여 두가지 방안을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기로 하고, 이와는 별도로 지금까지 준비된 내용으로 구청 설득작업을 진행하기로 하고 이날 회의를 마쳤다.


그런데 그날 밤 이강제씨의 연락을 받고, 16일 저녁에 낙산공원에서 이강제, 박현수, 김용산, 이성술, 김금춘씨 등 주민대표자 다섯분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전날 녹색교육센터에서 회의를 마치고 주민대표자들끼리 순대국집에서 따로 이야기를 더 했다고 한다.
이강제씨는 주민대표자들끼리 의견을 모은 결론이니 "당분간 냉각기를 가져보자"고 전했다.
개보수방식에는 선뜻 동의가 안되고, 신축은 실현가능성이 떨어진다하니 주민들앞에 앞장서서 움지이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합필해서 깨끗하게 신축하고, 적어도 길 정도는 정비되어야 주민들이 만족할 수 있지않겠냐는 이야기도 했다.
그러면서 해비타드의 합필신축 방안에 대해서도 썩 내켜하지 않았다.
"신축을 할려고 했던 것은 3층 지어서 1층 팔아 변상금 값고, 2층 팔아 건축비 대고.." 식의 표현이 가끔 등장했다.
이는 이 분들이 경험했던 소위 '집장사 방식'으로 이야기되는 다세대-연립주택 건축방식이다.

나만의 추측이지만,  이 분들이 보기에 개보수 방식이나 해비타트 신축방식은 경제적인 이득이 없어보였던게 아닌가 싶다.

해비타트의 신축은 저렴한 비용으로 장기분할상환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담 없이 자가소유를 가능하게 하지만, 대신 재산 증식의 수단은 안된다. 
집을 새로 지어서 변상금도 값고, 건축비도 충당하겠다는 희망을 채워줄 수 없다.

그 동안의 개발사업이 주민들에게 환상을 심어준 내용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층수 많이 올려서 일반분양분으로 많이 팔면 부담 없이 새 아파트 얻고, 그 아파트도 웃돈 받고 팔면 남는 장사 아니냐'는 논리에 혹해서 많은 사람들이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
하지만 막상 현실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엄청난 추가부담금에 놀라자빠지고 대박의 꿈은 커녕 정든 마을을 떠나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행운의 주인공은 알아도, 그 이면에 쫓겨난 사람들의 존재는 알지 못한다.

지자체는 이 마을을 재개발 예정구역으로 지정만 했을 뿐이지만, 막상 주민들의 기대 수준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주민들은 티켓도 없이 욕망의 전차에 올라탄 셈인데, 지자체는 이를 시정하려 들지 않고 있다.

장수마을(삼선4구역)이 재개발 예정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재개발사업이 전혀 추진되지 않는 이유는 용적율이 제한되어 있고, 층수를 충분히 올릴 수 없어 수익성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마다로 장사가 안된다는 것이다.

사실 장사가 되도 문제다.
재개발로 소위 괜찮은 주택지로 바뀌게 되더라도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주민이 거의 없다.
토지소유권은 없고, 집은 낡아서 재산가치가 없고, 특별히 모아둔 재산도 변변치 않고, 체납한 변상금은 쌓여 있고...
재개발이 되면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는 커녕 근체에 변변한 전월세 구하기도 쉽지 않은 처지다.
약간의 프리미엄을 받고 집을 판다고 해도 변상금 털고 나면 남는게 거의 없을 주민들의 처지를 고려하면 재개발 사업 추진은 거의 재앙에 가깝다.

대안개발팀은 마을과 집들을 고치든 새로짓든 주민들이 부담할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가장 중요하게 꼽았다.
해비타트의 염가주택건축방안이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이나 경관협정사업을 제안하고 주민들과 토론을 진행했고, 세부적인 계획을 만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주요하게 검토하던 테라하우스형 공동주택방식은 기대보다 높은 비용이 드는 것으로 판단해 대안에서 제외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주민들의 실망감이 컸다.

하지만, 우리는 주민들이 어느 정도 현실감을 갖게 되었고, 우리와도 어느정도 의견을 좁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며칠 사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그게 아닌것 같다.
지금까지의 토론과 설득으로는 부족했던 것 같다.
나도 미숙했고, 경험과 능력이 일천하다는 걸 절감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끝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안개발팀도 아직 구체적인 방안을 완성한 것이 아니니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
주민대표자들도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아서 흔들리는 것이지 완전히 돌아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지자체도 근본적인 대책은 세우지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계속 내버려두든지, 아니면 새로운 개발사업으로 주민들을 쫓아내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시간이 지체되고 상황은 더 안좋아지고 있지만,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적지 않은 주민들이 대안개발팀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호흡을 가다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