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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권, 도시재생

오래 전 나의 집 이야기..

오랜만에 웹진 "진보복덕방"을 다시 보다가..

어느덧 10여년의 시간이 흐른 옛 이야기를 끄집어내본다.

 

내 기억으로는 주거권운동네트워크의 시작은 2004년이나 2005년 언제쯤이었던 것 같다.

인권운동사랑방 사무실이 명륜동에 있을 때였고, 처음에는 주거권기획팀이라는 이름을 쓰다가 인권운동사랑방이 사무실을 충정로로 옮겨갈때쯤 주거권운동네트워크로 바꾼 것으로 기억한다.

주고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모였고, 사랑방 활동가들이 많은 역할을 했었기에 인권운동사랑방과 연결지어서 기억을 하는 것 같다.

주거권운동네트워크에 활동을 가장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을 사람은 아마 사랑방의 미류일 것이다.

 

우리는 개발에 대한 저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대안을 만들 수는 없을까, 기본권으로서 주거권을 보장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주로 했다.

주거권 워크숍, 주거의날 캠페인, 자료집 '그 많던 동네는 어디로 갔을까?' 발행 등 활동을 했고, 2007년에 웹진 "진보복덕방"을 만들었다.

문화연대 홈페이지 서버에 세들어서 그런지 주소창에는 '문화연대 진보복덕방'으로 뜨기도 하는 것 같다.

3~4년간 참 많은 이야기를 모았는데, 각자의 활동이 너무 바빠져서 2010년 가을쯤엔가부터는 더 이상 발행을 못하고 있다.

 

누가 하든 "진보복덕방"을 다시 발행하면 좋겠다.

 

"진보복덕방"에는 활동가들의 주거에 대한 경험과 고민을 가볍게 끄집어내보려고 했던 '나의집이야기'라는 코너가 있다.

거기에는 내 이야기도 있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만약 그 때 쓰지 않았다면 지금은 이미 기억이 흐릿해져서 남기지 못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제목이 ".. 책으로 쓸까?" 였네~

그 후로 더 쌓인 이야기, 앞으로 더 만들어갈 이야기를 더해서 언젠가는 진짜 책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래에 복사해 붙인 글이 2008년에 진보복덕방에 실은 나의집이야기이다.

원문 주소: http://www.culturalaction.org/webbs/view.php?board=houseagent&id=192&page=3&category2=4

 

“집과 사람이 얽힌 추억을 책으로 쓸까?”
박학룡
• 당신은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언제부터 살고 있나요?
1998년 결혼하면서부터 살고 있어요.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 당신은 현재 누구와 함께 살고 있나요?
아내와 둘이 살고 있어요. 그리고 바퀴, 개미, 파리, 모기, 노래기, …



• 당신은 현재 주택을 소유하고 있나요 아니면 임대하여 살고 있나요?
전세로 살고 있어요. 집 살 돈을 모으지도 못했고, 집을 소유하겠다는 생각도 별로 없어요. 가끔 집 사서 돈 번 사람 보면 배가 아프기는 하지만 ... -_-;



• 당신이 살고 있는 집의 주거비 부담은 어느 정도인가요?
전세보증금 3천만 원, 월세 10만원,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이 월 2~3만 원, 겨울철에는 난방비(기름보일러)로 한 달에 20만원 넘게 쓰기도 하니 1년 평균을 내면 월 10만 원 정도, …


1. 당신은 ‘집’을 생각하면 어떤 단어들이 순간적으로 떠오르나요?
휴식, 가족, 돈, 잠, 여유, 안락함, 편안함, 열쇠, 마누라, 이사, 가구, …

2. 지금까지 살았던 집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집은 어떤 곳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특이한 기억을 남긴 집이 여러 곳이라 딱 하나로 고르기가 어렵군요.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자취를 시작했고, 대학을 졸업할 무렵부터 몇 년을 군도바리와 땅굴(? 그 당시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표현임) 생활하느라 1년에도 몇 번씩 이사를 다녀야 했기에 별의별 집(자취방)을 다 겪었죠.

고1, 처음 자취하던 방에서 혼자 생라면을 먹고 있는데, 주인집 아주머니가 자식들에게 버럭 지르는 소리가 바로 “니들이 거지냐? 생라면을 처먹고 있게!”였습니다. 그 때 처음 알았죠. 생라면을 먹으면 거지로구나!
1992년인가 몇 달을 살았던 보문동 집은 옥상위에 임시로 지은 집이었는데, 최근 촛불집회와 더불어 세운 시청광장 천막농성장 수준이었죠. 난방시설이 없이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아 비닐장판을 덮었고, 판자 몇 개로 벽을 치고, 천정은 각목 몇 개 엮어서 슬레이트만 얹었고, 방문은 삐딱해서 주먹이나 발이 들락거릴 정도로 틈이 크고, 부엌이나 수도도 없어서 큰 고무통 하나 놓고 지붕 밑으로 고무호스를 늘어뜨리고는 주인집 할머니 불러서 수도를 틀어 달래서 물 받아 놓고, 암튼 그렇게 살았고 ...
길음동에서 반년 정도 살았던 집은 창이 하나도 없어서 칼로 벽을 자르고 접어서 창문을 냈었고...
막노동하면서 지냈던 장위동 집은 마당 하나를 공유하고 대여섯 세대가 나란히 살았는데, 벽이 얇아서 옆집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방음이 안 돼 숨죽이며 살았고...
조금 멀리 가보자고 얻었던 면목동 집은 너무 좁아 대각선으로 누워 자야 했고...
나름대로 오래(1년 넘게) 살았던 삼양동 집에서는 주먹만한 강아지가 있었는데, 어쩌다 술을 안마시고 들어가는 날엔 날 못 알아보고 심하게 짖어댔다는...
삼선교 넓은마당 근처에서 살았던 집은 이웃들이 아주 독특했는데, 주인집은 날마다 부부싸움 하느라 그릇 깨지는 소리는 기본이고, TV가 날아다니고, 세탁기 부서지고, .... , 암튼 부서져 새로 장만한 가전제품 값만 따져도 명동에 빌딩하나 정도는 세웠음직하고... , 부엌문이 따로 없어서 문 대신 커튼을 쳐놓고 샤워하는데 모르는 척 들춰보는 이웃들 때문에 종종 민망해하기도 했죠.
복덕방에서 선이자 3만원 주고 보증금 빌려서 들어갔던 당고개 집은 건물외벽 옆 자투리공간에 덧붙인 방이었는데, 마주보는 면(벽) 어느 곳도 서로 닮지 않아 직육면체를 이루지 못했는데, 당시 82세인 주인할아버지는 알콜성 치매인지 술이 취했을 때와 깼을 때의 기억과 생활이 따로 진행되는 다중인격 증세를 보여 어느 타이밍에 월세를 줘야하는 지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는...

아휴~ 얼핏 생각나는 대로만 써도 한이 없네요. 나중에 따로 소설이나 수기로 책 한권 써야겠네요. ^^

3.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좋다고 느껴질 때는 언제인가요?

집값 상승이니, 전세값 상승이니 떠들썩할 때 전세보증금 올려달라는 소리 안 해서 좋아요.
이사한 지 5년이 지난 2003년 전세를 올리는 대신 월세 10만원을 더 내기로 하고, 그 후로 또 5년정도 지났군요. 그 당시 나는 노원에 있던 버스 사업장 파업 지원 중이었는데, 집주인 아저씨가 나를 불러 금리가 너무 낮아 세금도 안 빠진다면서 월세를 받아야겠다고 하길래 파업 끝나면 이사를 가겠다고 했다가 바로 수배생활로 접어드는 바람에 지금까지 그냥 월세 내면서 살게 되었답니다. 내심 이사 비용을 대신해 월세를 내고 있었다고 위안 삼으며 살고 있어요.
그리고 사실 지금 보증금으로는 서울에서는 마땅히 이사할만한 곳도 없어요. 멀리 떠나거나, 뭔가 인생이 바뀌기 전에는 그냥 정 붙이고 살아야 해요.
안방 창 밖에 공원 정자가 있는데, 이곳이 새벽에 술에 취한 고삐리 대삐리들 유흥이나 데이트 장소가 돼서 시끄럽기도 하지만, 주로는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서 막걸리 한 잔씩 드시고 수다 떨면서 노래자랑(음치 경연대회에 더 가까움) 하는 곳이라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사람냄새가 나는 곳이지요.

4. 집의 많은 공간들 중 당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거나 어떤 순간에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글쎄요... ‘많은 공간들’이라는 말에는 말문이 막히네요. ^^;
다가구집에 한 칸 차지하고 있는 13평짜리 집에 ‘많은 공간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쉽지 않은 미션이네요. ㅋㅋ
지금은 단둘이 살기도 벅찬데, 우리가 이사들어가기 전에는 여섯 명이 살던 집이라네요. 어휴~ -_-;
그래도 사실 구석구석 다 소중하긴 해요. 10년의 손때가 묻은 집이거든요. (이사하면서 벽지나 장판을 안 바꾸고 그냥 살았으니, 손때로 치자면 두 집 합쳐서 20년 손때로군요. 그래서 그런지 집이 꼬질꼬질해요. 하하하) 그래도 딱 하나만 고르라면, 식탁을 고르고 싶군요.부엌을 겸하는 좁은 거실에 있는 60cm×60cm크기의 작은 식탁이지만 마누라와 함께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술도 마시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곳이거든요. 한마디로 식탁이 바로 우리집 중심인 셈이죠.

5.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불편한 점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요?

베란다가 없어서 좁은 거실에다가 건조대를 세워놓고 빨래를 널고, 화장실이 좁아서 샤워하기가 불편하고 세탁기도 놀 자리도 없어서 좁은 거실에 세워놨어요. 수도 수압이 낮아서 물 쓸 일이 많은 아침이나 저녁시간엔 설거지가 만만치 않은 일이에요.
다음 이사할 때는 필수 체크 포인트가 바로 수압, 화장실 넓이, 베란다 유무에요. ^^;

6. 현재 부담하고 있는 주거비용이 줄어든다면, 그것으로 무엇을 하고 싶나요?

하고 싶은 건 너무 많아요. 카메라 광각렌즈도 사고, 여행도 가고, 맛있는 요리도 사먹고, 괜찮은 침낭도 사고, 스팀청소기도 사고, 등산 배낭도 새로 사면 좋겠고, 컴퓨터도 바꾸면 좋겠고, 핸드폰도 버튼이 잘 안 먹는데, … 그러나 실제로는 다 포기하고 신용카드 대출부터 갚아야 해요. 에궁.

7. 앞으로 당신이 살고 싶은 집이 있다면 어떤 집이고, 그런 집에서 언제쯤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몇 년 전부터 나이 50이 넘으면 시골에 헌 집 하나 사서 고쳐가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세련되고 편리하게 잘 지어진 집 말고, 내가 하나하나 고치고 만들어가는 촌스럽고 투박한 집 말이죠.
언제쯤 살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 글쎄요? 지금이라도 시작은 할 수 있겠지만, 그러자면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하군요. 아직은 보물섬같은 꿈일 뿐이네요. 그래도 꿈이 실현되는 그 날을 위해 집에 대한 공부를 조금씩은 하고 있답니다. ^^;
2008년07월15일 15:3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