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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권, 도시재생/(주)동네목수의 장수마을 집수리 이야기

294-2번지(동네목수의 작은카페) 집수리..

어제부터 2012년 시사인에 연재한 글을 다시 보고 있다.

두번째 글이 294-2번지를 카페로 만드는 공사 이야기였는데, 294-2번지 이야기는 이글에 약간 덧붙이는 식으로 떼워도 되겠다. ㅋㅋ

 

지금 동네목수의 작은카페로 운영하고 있는 294-2번지는 원래 방*식씨 소유였는데, 2006년 경에 현재의 소유주한테 팔고 그 집에서 그대로 세입자로 지내다가 2011년에 보문동으로 이사를 갔다.

지금의 집주인은 당시에 이 집이 한양도성 낙산구간 산책로 계획 부지로 포함된 도면을 확인하고 매입을 했다고 한다.

철거민분양권을 받기 위해서 매입을 한 것인데, 자기 나름대로는 확실한 정보를 갖고 투자를 했는데 달랑 서너집만 대상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완전히 물먹었다고 아직도 억울해한다.

내가 알기로는 서울시는 도로나 공원을 조성하는 도시계획시설사업을 할 땅을 수용하기 위해 해당 부지의 토지나 지장물 소유자에게 실비보상 외에도 재개발아파트 분양권을 제공하는 '서울시 철거민 특별분양권'이라는 제도를 운영하다가 2008년 4월 18일자로 폐지했다.

한양도성 낙산구간 산책로 조성을 위해 성곽에서 2~30미터 범위에 있는 집들이 2008년부터 2009년 사이에 철거가 되었고, 2009년 가을쯤에 산책로가 완공이 되었는데, 이때 철거된 집의 소유주들이 사실상 마지막으로 서울시 철거민특별분양권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장수마을 주택 소유주들 중에는 바로 이 서울시 철거민특별분양권을 노리고 투자했다는 이가 많은데, 내가 겪은 사람들 중에서 재개발구역이라 투자했다는 분들은 대체로 '묻지마' 투자자이고, 철거민특별분양권을 노리고 투자했다는 분들은 나름대로 '분석형' 투자자였다.

뭐 결과는 마찬가지지만.. ㅎㅎ

294-2번지 소유주는 산책로 조성 계획도면까지 확인하고 투자를 했는데, 공사를 하는 도중에 제외된 서너집에 포함되었으니 얼마나 분통이 터졌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암튼 집주인 사정은 그렇다치고..

카페에 들르는 분들 중에는 이 동네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분들이 종종 있다.

이사를 했거나 돌아가신 분의 소식을 묻는 경우가 많지만, 가끔 지금 거주하고 있는 분의 근황을 물어올때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들뜬다.

카페 뒷집과 옆집 형님들과 어릴적 친구였다는 분이 다녀갔는데, 294-2번지에 대한 기억도 있었다.

내가 뭔가 작업에 열중하느라 옛날 얘기를 더 캐묻지 못했는데, 연락처라도 받아둘 걸 그냥 보낸게 무척 아쉽다.

 

카페 공사를 하기 전에 내가 기억하는 294-2번지는 14평짜리 작은 집에 오밀조밀한 방이 5~6개나 있었는데, 본채에는 방 2칸에 마루와 부엌이 있었고, 부엌에는 장독대를 겸한 연탄창고가 붙어 있었다.

본채 옆으로는 현관과 부엌을 겸한 보일러실이 딸린 단칸방이 두어개 붙어 있었다.

본채에는 방씨 어르신 내외와 아들이 지내고 있었고, 옆에 딸린 방들은 세를 놓고 있었다.

 

아래 사진은 294-2번지의 공사 전 방*식씨 가족이 살던 때의 모습이다.

 

 

 

간단히 떼우려고 했더니 얘기꺼리가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시사인 글도 있으니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쓰고 나중에 이어서 써야겠다.

 

아래는 2012년 4월에 시사인에 쓴 294-2번지 집수리에 관한 글이다.

 

원문주소: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3082

> 뉴스 > 정치 | 풀뿌리 수첩
동네 주민들과 옥신각신, 그래도 카페는 완성!
좌충우돌 집수리였다. 골목에 경사로를 놓는 문제로 옥신각신, 내부 목공과 페인트칠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래도 보기 좋았다.
[242호] 2012년 04월 27일 (금) 23:00:28 박학룡 (마을기업 ‘동네목수’ 대표)
빈집 294-2번지(서울 성북구 삼선동)를 고쳐서 만든 ‘동네목수의 작은 카페’, 일명 동네카페는 마을기업 동네목수의 두 번째 빈집 프로젝트 결과물이다. 첫 번째 빈집 프로젝트인 295-4번지 리모델링을 경험한 자신감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정말 무모했다.

2011년 11월 방씨 할아버지가 이사를 가 집이 비었다는 소식을 듣고 집주인에게 그 집을 동네목수가 쓰고 싶다고 제안했다. 마침 마을카페로 쓸 빈집을 물색하던 중이었는데 막 나온 빈집의 위치가 여러모로 좋았기 때문이다. 협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두 번째 만남에서 바로 계약을 체결하고, 명확한 설계 없이 대강의 구상만으로 공사를 시작했다. 집주인도 나도 시원했다.

294-2번지는 마을에서 왕래가 잦은 골목에 있고 눈에 띄는 자리여서 공사에 착수하자마자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 사람 저 사람 오가며 의견을 주고 참견하는 통에 공사 계획이 수도 없이 바뀌었다.


   
ⓒ박학용


마을 안에서 유일하게 계단 없이 수레가 다닐 수 있는 길이니 휠체어도 다닐 수 있게 경사로를 놓자는 제안에 담장을 허물고 축대를 넓혔다. 그런데 이씨 할아버지가 새로 쌓은 축대를 걷어차며 격렬하게 항의를 했다. 길은 넓혀가는 것이지 좁히는 것이 아니란다. 축대를 내어 쌓지 않으면 경사로를 포기하거나 화장실 하나를 포기해야 하지 않느냐, 장애인과 주민 편의를 고려해달라는 등등 구구절절 설득했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화장실 하나는 포기하고 길모퉁이 모서리 부분을 한 뼘만 넓혀서 경사로를 내기로 타협했다. 그런데 미장공 권씨 할아버지가 옹벽 모퉁이 꺾인 부분을 활용해서 작은 화장실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덩치가 큰 사람이 쓰기에는 비좁은 공간이지만 화장실을 남녀 구분해서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저거 내가 다 했다” 뿌듯한 할아버지

카운터와 테이블 같은 내부 목공 작업은 동네목수 김씨 할아버지가 맡았다. 몰딩도 자기가 만들면 사는 것보다 더 멋질 거라고 해서 맡겼다. 그런데 막상 만들어온 몰딩은 쪽대를 두세 장씩 덧대어 붙이는 작업을 수반했다. 하루에 끝낼 몰딩 작업에 형님 둘이 사흘을 매달려야 했다. 그 일 이후로 김씨 할아버지가 자신 있게 제안하는 일은 꼼꼼하게 따지게 되었다. 설계도면 없이 하는 김씨 할아버지의 작업은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려워 어떤 구상인지 매번 연필로 그려가며 확인을 하지만 결과물은 상상과 달라지기 일쑤다. 원래 구상이 그랬는지, 만들다가 바뀌었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투박한 나무의 질감을 나름 살려내는 인테리어에 달동네 어르신들의 감성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는 분이 많다.

내부 인테리어 페인트칠은 우씨 할머니가 맡았다. 금색이 좋겠다고 해서 그러자고 했는데, 완성된 걸 보니 금색이라기에는 좀 묘했다. 몰딩에는 산뜻하게 빨간색을 쓰자고 해서 또 그러자고 했는데, 결과물은 어두운 붉은색이었다. 출입문에 발만 늘어뜨린다면 완벽한 중국요릿집이 될 것 같은 모양새다. 그래도 동네 할머니들은 색이 예쁘게 잘 나왔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애초에 구상한 대로 된 것이 거의 없는 좌충우돌 공사였지만 카페는 완성되었다. 마을 주민들은 개업식 언제 하냐며 관심을 보여주신다. 카페 공사에 많은 힘을 쓴 권씨 할아버지는 동네 아래에서 카페를 올려다보며 “보기 좋지 않냐, 저거 다 내가 했다”라며 매우 뿌듯해하신다. 지나가시는 할머니들도 집을 싹 고쳐서 단장하니 동네 품격이 높아졌다며 즐거워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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