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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권, 도시재생/(주)동네목수의 장수마을 집수리 이야기

장수마을 집수리 이야기 299-1번지

299-1번지 주변의 풍경을 보면 장수마을의 은근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아래 두 사진은 한성대학교 연구관 옥상이나 계단에서 찍고, 299-1번지 주변만 잘라낸 것이다.

내가 장수마을 전경 사진을 찍을 때 주로 이용하는 곳이 한성대학교 연구관 옥상인데,

가끔은 문이 잠겨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건물 외벽에 있는 계단에서 찍기도 한다.

계단이 9층까지인지, 10층까지인지는 가물가물한데 요즘은 운동부족으로 이 계단을 오르기가 벅차서 잘 가지 않는다.

아무튼 옥상과 계단의 높이 차이로 사진마다 미묘한 각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그냥 그러려니 하고 봐야 한다.

 

 

왼쪽 사진은 2013년 말이나 2014년 초쯤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2015년 가을쯤 모습이다.

왼쪽 사진은 299-1번지를 표시하려고 동그라미를 그려 넣다가 메타데이터가 지워져버려서 촬영날자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진에 집집마다 도시가스 배관이 연결된 것으로 보이는데, 각 가정의 배관작업은 2013년 여름부터 시작했으니까 적어도 그 뒤다.

299-1번지(동그라미)를 포함해서 그 주변에 6집이 2014년 여름에 집수리를 시작했는데, 다들 고치기 전 모습이니 그보다는 앞이다.

 

 

299-1은 집이 작고 허술했지만 집안에 들어섰을 때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지붕에서 뭔가가 떨어지기도 하고, 벽체가 낡아서 금방이라도 무너질것 같은 분위기라서 이웃 어르신들은 몹시 불안해하였다.

 

나는 집 주인을 찾으려고 여러 방법으로 수소문을 했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동네 할머니들에게 혹시라도 이 집에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연락처를 받아달라고 부탁을 해 뒀다가 2011년쯤엔가 겨우 세입자라는 분과 연락이 닿았다.

그분은 자기도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전세보증금 500만원을 돌려받지 못해서 짐만 놓아두고 가끔 들러보기만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 집을 고쳐서 마을카페를 할 생각이었다.

집주인을 찾지 못해서 2011년 겨울에 294-2번지에다 카페를 만들었고,

그 뒤로는 이 집이 무너지기 전에 안전조치를 해야겠다 싶어서 집주인을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었다.

 

 

집 상태는 점점 엉망이 되었고, 골목 어르신들의 걱정은 커져갔다.

 

그러다 2014년 6월쯤 집주인이라는 분한테 연락이 와서 동네목수 카페에서 만났다.

상당히 젊은 여성이었다.

남동생한테 아파트 분양권을 선물한다는 생각으로 남동생 명의로 구입을 했는데, 10년이 넘도록 이도저도 안되고 오히려 남동생 취업을 가로막게 돼서 처분하려 한다고 했다.

이 집을 소유하는 동안 가족관계와 생활이 여러가지로 복잡하게 꼬였던 모양이다.

나는 세입자 보증금부터 깨끗하게 처리해야 매매를 하든 뭘 하든 다음 순서를 진행할 수 있다고 설득을 하였다.

세입자한테 임대차계약서를 찾아서 가져오게 하고, 서로 보증금과 열쇠반환 등 합의를 중재했다.

 

집주인은 하루라도 빨리 소유권을 넘기고 싶어했고, 나보고 인수해달라고 사정을 했다.

나는 회사에 여유자금이 없으니 매매대금을 현금으로 지급하지 않고 변상금 체납금을 승계하는 조건으로 소유권을 넘겨받을 수는 있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체납변상금을 떠안고 소유권을 넘겨받았는데, 그 분의 남동생 문제가 바로 풀리지는 않았다.

몇번 더 연락이 왔고, 남동생이 차가 필요한 직장에 취업을 하려고 하는데 차에 압류가 걸려서 취업에 지장이 생겼다고 어쩌면 좋냐고 하소연을 하였다.

구청 세무과에 문의를 하니, 국공유지 변상금은 세금과 같아서 납부 의무는 체납한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체납금을 다 갚을때까지는 체납자의 재산이 있으면 압류를 걸수밖에 없단다.

세무과 담당자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급하게 돈을 구해서 일부 갚고 차량 압류를 풀게 했다.

한 번이면 해결 될 줄 알았는데, 그 뒤로도 몇차례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고, 결국 빚을 내서 체납금을 다 갚았다.

 

어쨋든 이런저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299-1번지를 인수하여 수리를 하게 되었다.

공사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는데, 카페를 이곳으로 옮길 계획으로 시작했다가 공사를 하는 도중에 계획이 변경되었다.

몇가지 사정이 있었지만, 옆집의 민원으로 원래보다 면적을 좁히게 된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동네목수가 맡고 있던 집수리가 여러개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이었고, 299-1번지 작업은 내부 일이었기 때문에 매번 후순위로 밀렸다.

이래저래 공사계획이 중간에 몇차례 바뀌면서 컨셉이 모호한 집이 되고 말았다.

 

  

왼쪽은 고치기 전 평면이고, 오른쪽은 몇차례 변경을 거친 거의 마지막 계획평면이다.

실제 마무리된 내용은 이 도면과 거의 같지만, 싱크 위치가 막판에 변경되었다.

 

 

299-1번지가 고쳐지니 어르신들은 골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좋아하시는데, 동네목수는 소유의 고통을 맛보는 시간이었다.

아무튼 299-1번지는 새로운 주민이 동네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하거나, 골목사랑방이나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할 계획이다.

지난 주에 아산에서 올라온 엄마와 아들이 입주를 했는데,

이곳에서 에너지를 잔뜩 충전해서 더 좋은 보금자리로 옮겨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