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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권, 도시재생/(주)동네목수의 장수마을 집수리 이야기

장수마을 순환임대주택 2호 293-5번지

293-5번지는 장수마을 순환임대주택 2호이자 여성전용 순환임대주택이다.

순환임대주택은 집수리공사 기간에 임시로 거주하거나, 장수마을에 정착하기 전에 임시로 살아보는 집이다.

장수마을 집수리 활성화와 세입자 보호를 위해 (주)동네목수가 운영을 하고 있다.

293-5번지에는 장수마을에 정착하려던 분이 반려동물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는데, 지금은 장수마을 정착을 포기하고 3월이면 떠날 예정이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지만, 누구에게나 살기 좋은 곳은 아니라는 사실을 쿨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293-5번지에 얽힌 사연은 많은데, 자료를 뒤져보니 집수리과정 말고는 사진이 별로 없다.

내가 장수마을 전경사진을 주로 찍는 한성대 옥상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위치라 그런것 같다.

거주하던 분도 집 내부를 보여주기를 꺼려했었다.

 

293-5번지에서 2013년 초까지 거주한 성*숙씨는 이 골목 사람들한테 피아노선생으로 불렸다.

음악을 가르치는 일을 했고, 동네에서도 기회가 되면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 사연으로 2010년 가을에 한성대 학생들이 벽화봉사활동을 할 때 이 집과 골목에 음표 벽화를 그렸다.

본인이 학생들한테 음표를 그려달라고 했는데, 결과를 썩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2010년 11월 한성대 벽화봉사단이 293-5번에 담장과 골목에 그린 벽화

 

성*숙씨는 2005년쯤인가에 이사를 온 세입자였는데, 이곳에 재개발이 되면 세입자 보상으로 임대주택과 주거이전비를 받을 줄 알고 이사를 왔다고 했다.

그런데 재개발은 진행이 안되고, 집주인과의 계약관계도 증명할 방법이 없어서 보증금 천만원을 돌려받기도 곤란한 처지였다.

장수마을에는 재개발 투자 붐이 일던 2003년~2007년 사이에 기획부동산의 중개로 집을 사거나 세들어 온 경우가 많은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획부동산이 다 알아서 해준다는 말만 믿고 허술하게 계약을 했다.

계약자 이름이 다른 경우는 허다하고, 계약서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고, 당시 거래를 중개했던 기획부동산 관계자와는 아예 연락이 안되는 경우가 더 많다.

나는 어쩌다 당시 거래를 많이 시켰던 기획부동산 관계자와 연락이 닿아서 본의 아니게 소송을 준비하는 투자자들과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때 들은 사연들도 기억이 더 흐릿해지기 전에 기록해두면 좋을텐데 언제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성*숙씨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서 떠나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한편으로는 이곳에서 사는 동안 딸과의 추억도 쌓이고, 정도 들어서 차라리 정착을 하고 싶기도 했다.

당시 소유주도 이곳에 투자를 잘못했다는 걸 느끼고 있었고, 집을 처분하고 싶어했기에 내가 거래를 중재했다.

임대차계약서는 없지만 집주인은 임차인 성*숙씨의 전세보증금 천만원을 인정해주고, 임차인 성*숙씨는 전세보증금 천만원을 포함하여 3천4백만원(아마도 그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에 매입하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2012년에 성*숙씨는 세입자에서 집주인이 되었고, 집수리를 계획하면서 행복해했고, 골목통신원까지 맡았다.

 

그러던 2013년 봄에 성*숙씨는 갑자기 딸이 아파서 병원에 있다며 나한테 자기 집을 사 달라고 했다.

마침 동네목수도 순환임대주택를 더 확보하려던 참이어서 성*숙씨가 매입한 금액에 소유기간 들어간 토지사용료를 합친 정도의 가격으로 매입을 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순환임대주택 2호를 만들게 되었다.

성*숙씨는 골목통신원까지 맡으며 마을 활동에 나서다가 갑자기 마을을 떠나게 된게 이웃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창피하다며 마을에 오는 걸 꺼려했다.

나는 자신이 살던 집에 어떻게 변해가는지 궁금해하는 성*숙씨에게 이메일로 293-5번지 사진을 몇 번 보내주었던 것 같다.

 

 

293-5번지 공사 전 후 사진

 

순환임대주택과 쉐어하우스가 가능한 구조로 리모델링하기 위해 구가건축에 설계를 부탁했다.

모녀가 살던 집이고, 한쪽에 동네목수 여성 직원이 거주하도록 할 계획이었기에 여성전용 순환임대주택으로 구상했다.

 

구가도시건축에서 작업한 현황도면과 계획도면

 

 

리모델링을 마친 293-5번지.. 두 세대가 독립적으로 생활하도록 가벽으로 마당을 분리하고 대문도 2개를 달았다.

 

뒤쪽에 보이는 293-7번지는 아마도 동네목수가 가장 고생했던 장수마을 집수리 사례일 것이다.

293-7번지 이야기도 나중에 올리겠다.

 

293-5번지에서 행복하게 거주할 분이 빨리 나타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