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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권, 도시재생/(주)동네목수의 장수마을 집수리 이야기

오랜만에 다시 보는 동네목수의 눈물나는 창업이야기..

동네목수의 장수마을 집수리 이야기를 연재하겠다고 질러놓고 설 연휴 전후로 한참을 못 올리고 있었다.

이번엔 어느 집을 추억해볼까 생각하다가 문득 2012년 시사인에 장수마을 이야기를 연재했던 게 떠올라 검색을 해 봤다.

2012년 시사인에 연재한 첫번째 글이 동네목수의 좌충우돌 창업기였고, 그 뒤로 몇 번 동네목수 집수리 이야기를 실었다.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나만 그런가? ㅋㅋ

 

초창기 동네목수의 모습은 우습고 어설펐다.

지금은 동네목수 공동대표이자 장수마을 주민협의회 대표가 된 배정학 대표가 당시에는 동네목수 총무였고, 동네에서는 배총무로 불렸다.

주로 미장이나 설비 기술을 가진 동네 어르신이나 형님들을 모시고 일을 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뭐가 필요하다고 부품이나 공구를 찾으면 만만한 배총무님이 삼선교에 있는 건재사까지 비탈길을 달려서 구해와야 했다.

특히나 설비 일은 배관의 종류와 사이즈별 연결부속들, 작업공구들이 가지수가 엄청나서 기술자나 건자재 사장도 다 외우지는 못한다.

거기다 일하는 사람마다 쓰는 용어도 제각각이고, 주문도 모호하게 대강 그거, 저거 하는 식이니, 노가다 초짜인 배총무님은 부품을 잘못 가져와서 다시 가고, 모자라서 다시가고, 불량이라 다시 가고... 하루에도 몇번씩 장수마을과 삼선교를 왔다갔다 하느라 입에 단내가 가득했다.

 

지금은 다른 회사에 취직한 이중구 반장님도 동네목수 초창기 멤버다.

당시에는 따로 직책이 없었고 나한테는 그냥 중구형님이었고, 동네 어르신이나 기술자들한테는 이씨나 '어이~'로 불렸다.

힘이 좋았던 중구형님의 주특기는 구루마(손수레) 운전이었다.

중구형님은 구루마에 벽돌과 시멘트, 목재 따위를 싣고 낙산 능선과 장수마을 비탈길을 하루에도 몇번씩 오르내렸는데,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여줬다면 70년대 영상이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구루마를 끄는 사진은 없다.

아마 나도 비탈길을 힘겹게 오르는 구루마를 밀어주느라 사진을 찍을 틈이 없었을 것이다.

 

아래 사진은 중구형님이 동네목수에 처음 온 날 동네 쓰레기장을 청소하는 모습이다.

당시에 동네목수 재산목록 1호가 이 구루마였다.

 

 

아래 덧붙이는 글은 2012년 3월에 시사인에 쓴 동네목수 창업 이야기다.

 

원문주소: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2818

 

변기공사 끝! 그런데 화장실 문이…
쓰러져가는 달동네 집을 고친 지 1년. 눈물 나는 출발이었다. 큰소리 빵빵 치던 할아버지들이 일을 시작하면 끙끙대기만 했다.
[238호] 2012년 03월 30일 (금) 23:46:55

박학룡 (마을기업 ‘동네목수’ 대표)

서울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에서 마을기업 ‘동네목수’를 만들어 쓰러져가는 달동네 집을 고치기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회사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주먹구구식이었다. 2011년 여름, 사업자 등록도 하기 전에 동네 사람들 데리고 집을 고친다고 했더니 사람들이 선뜻 일을 맡기려 들지 않았다. 솔직히 마을기업을 운영하는 나조차도 우리가 정말로 집을 고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갖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일 터였다.

첫 번째 일은 김 목수 할아버지와 함께한 수도 공사였다. 김 목수 할아버지는 옛날에 건축업을 크게 해봐서 집 고치는 건 자신 있다고 큰소리를 빵빵 치는 사람인데 고관절 장애로 10년이 넘게 목발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 어르신이 막상 작업에 들어가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표정으로 갸웃거리며 이리 만졌다 저리 돌렸다 하기 일쑤라 보는 사람 마음을 죄게 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김씨 할머니네 수도 공사를 한나절이면 끝낼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김 목수 할아버지는 결국 사흘이 지나도록 끙끙대기만 했다. 그 와중에 욕심 많은 김 할머니가 요구하는 문고리며 손잡이며 이것저것 손보는 서비스까지 다 해주었다. 그러고도 일을 하다보면 원래 그렇게 되는 거라고 되레 큰소리치더니 사흘치 일당을 받아갔다. 우리가 시공비로 받은 것은 한나절 작업으로 계산해서 받은 게 다였는데 말이다. 첫 공사부터 손해를 본 셈이다(물론 일하는 솜씨를 검증받지 못했기 때문에 김 할아버지의 일당은 보조로 일하는 잡부보다 적었다).


   
‘땅콩 할아버지’ 부부네 화장실 변기 공사. 이후 한동안 시공 의뢰가 들어오지 않았다.


한동안 시공 의뢰도 들어오지 않아


두 번째 일은 몸집이 아담한 땅콩 할아버지 부부의 화장실 변기 교체였다. 무릎이 부실해져 쪼그려 앉는 걸 힘들어하는 할머니를 위한 할아버지의 애틋한 요청이었다. 이번에는 경로당에 방치돼 있던 헌 변기를 찾아낸 이씨 할아버지가 나섰다. 기술자는 아니지만 웬만한 일은 전부 자기 손으로 해냈으니 믿고 맡겨보라고 큰소리를 치는데, 어차피 변기도 새것이 아니니 솜씨가 부족해도 크게 문제 되지는 않겠다 싶어서 일을 맡겼다. 대신 시공비조로 약간의 수고비만 땅콩 할아버지 부부가 이씨 할아버지한테 직접 주시라고 했다. 이씨 할아버지 실력을 확인한 적이 없으니, 마을기업이 공식적으로 맡았다 일이 잘못되면 회사 이미지가 실추될 것을 우려한 나름의 꼼수였다.

이씨 할아버지는 더운 여름날 비좁은 화장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난쟁이들만 쓰는 화장실이라고 툴툴거렸다. 땅콩 할아버지 부부는 자기들한테는 적당한 크기라며 허허 웃었다. 그렇게 변기를 뜯다가 낡은 수도배관이 부러졌다고 부품을 사러 건재상까지 왔다 갔다 하더니 이번에는 변기 부속이 안 맞는다며 또 건재상을 들락거렸다. 꼬박 이틀에 걸쳐 어찌어찌 끝내고 보니 화장실이 워낙 좁아서 사람이 들어가면 문을 닫을 수가 없다. 이씨 할아버지는 할멈·영감끼리 사니까 그냥 문을 열어놓고 일 보시라고 눙치고 넘어간다. 실내도 아닌 실외에 있는 화장실인데, 비 오는 날이나 겨울에는 어쩌라고…. 아무튼 그렇게 공사는 끝났고, 땅콩 할아버지는 맘에 차지 않지만 이래저래 고생을 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재료비와 수고비로 12만원을 이씨 할아버지한테 건넸다. 며칠 뒤 변기 물이 잘 안 내려간다고 하여 이씨 할아버지는 또 하루를 더 변기와 씨름해야 했다. 땅콩 할아버지 부부는 이씨 할아버지의 변기 교체 실력을 골목길에 쫙 퍼트렸다. 그 덕분에 꼼수를 부린 보람도 없이 한동안 시공 의뢰가 들어오지 않았다. 참 눈물 나는 출발이었다(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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